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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힘들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썼다. 그리고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만약 사람의 환경과 불안, 고통이 글의 깊이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나는 그 영향으로 인해 변했다. 변했음을 느꼈다.
오늘 문득 예전에 적어놓은 글자국들을 발견했다. 아주 오랫만에 마주한 그 글자국들은 곳곳에 눈물이 배어있어 뚝뚝 흐르는 듯했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그 때 글을 참 많이 남겼는데, 그 글들을 다시 눈에 담아 열어보니 새삼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먼저 든 생각은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점, 지금 내 생각의 깊이와 무언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쓴 글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쓴 글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넓고 깊은 바다가 되기 위하여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현재의 내가 꽤 단순해졌다는 것. 오랫동안 글을 정기적으로 쓰는 일을 하지 않다보니 내 생각은 단순해졌다. 오랫동안 글을 정기적으로 쓰지 않은 이유는? 카페 일을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놓기도 했고, 심적으로 지독하게도 힘들었던 그 환경에서 놓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과 현재 힘든 환경이 아니라는 것. 이런 요소가 나의 생각을 얕은 바다로 만들어놓은 듯했다. 물론 훨씬 좋은 환경에서 심적으로 힘들지 않은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내 생각의 바다가 얕아지는 것, 그 색깔이 적어지는 것, 단순해지는 것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더 넓고 깊은 바다가 되고싶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 많은 것들을 헤아려보고 고민하고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지금 분명 해야할 일은 사고력을 키우는 것. 뇌를 훈련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뇌를 멈추지 않으려면

우리 뇌의 용량을 극히 일부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이룬 일들을 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뇌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훈련시켜야한다. 그런 과정에서 성장하고 넓어지고 깊어진다. 성장하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왜 중요할까?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우리는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성인이 되기까지 각각의 성장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익힐 수 있었고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의 뇌가 매일매일 리셋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제 배운 지식, 어제의 경험으로 오늘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때 내 시야에 담겼던 세상이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로는, (국가에서 정한 교육을 마친 이후로는) 새로운 지식을 쌓고, 경험하고 부딛치며 뇌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잊은채로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쌓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들이, 지금 훈련한 뇌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그 찬란한 미래를 상상조차 해보지 않고 그저 화려한 어항 속을 맴도는 것이랄까. 실은 내가 그런 것 같아 위협감을 느꼈다. 내 두뇌에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지 않으려고 한다. 배움과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날이 갈 수록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뇌를 멈추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뇌를 멈추지 않는 것이랑 블로그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나?
그래서, 서두에서 블로그를 쓰지 않았던 거, 힘들지 않은 상황이 나를 단순하게 만든 것 같다고 했는데. 블로그를 쓰는게 정말 뇌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이건 내가 분명히 느낀 나만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분명 과학적인 사실이 뒷받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UCL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휴고 스피어니스 교수가 진행한 기억에 대한 연구 결과가 아주 흥미롭다. 바로 아주 복잡한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에 대한 연구인데,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도로 6만여 개와 10만여개의 주요 지점들을 모두 외운다. 마치 집의 거실에서 책이 어디있고 소파가 어디있고, 부엌이 어디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택시 기사들에게 런던의 거리가 그런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이 정보를 머릿 속에 담기 위해서 보통 2-4년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두뇌의 변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방대한 양의 암기가 일어나는 동안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커지는 것이 포착되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는 그저 아 런던의 택시기사들은 그 복잡한 거리를 외우는구나 대단해 라고 끝낼 일이 아니다. 아주 함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뇌가 평생 우리의 두뇌가 아니고, 인간에게는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그걸 훈련시키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둔다는 것은 결국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서론이 길었으나 요점은 명확하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며 암기하는 과정에서 두뇌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 이 점을 블로그 쓰기와 연관시켜보자면, 나는 오랫동안 블로그를 써왔는데 주로 건강과 관련된 정보들, 기타 다른 정보들을 찾아 정리하고 글로 풀어서 쓰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그때는 그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용돈벌이를 했으니 나에게 유익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처리해야할 업무였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해볼 점은 내가 그렇게 블로그를 쓰는 동안 적었던 글들을 다시 살펴보니, (물론 그 때가 심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글의 깊이가 지금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사용했던 어휘나 문체, 문맥이 설득력있고 짜임새 있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그 과정이 뜻밖의 두뇌 훈련이었다니! 너무 신기한 사실이었고, 여러 부면에서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던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발견이었다.
결론은 글을 계속 써보겠다는 것.

결론은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글을 써내는 과정이 나를 훈련시키고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난 그렇게 하기 위해 다시 블로그를 써보겠다는 다짐의 글이었다. 끝-